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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신농

가스마울지마 2022. 7. 23. 12:09

오제 앞의 삼황은 사마천도 그것을 역사로 인정할 수 없었던 듯 언급을 피했다. 사기의 이본 중에는 삼황본기부터 시작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사마천이 쓴 것이 아니라 당나라의 사마정이 보충한 부분이다. 같은 성을 쓰는 친족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쓸데없는 짓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마정은 포희, 여왜, 신농을 삼황이라 하고, 그 외에도 천황, 지황, 인황을 일컫는다는 설도 소개를 했다. 포희는 복희를 말하는 것인 듯한데, 삼황에는 아직 이설이 있어 여왜 대신 축융을 넣은 것, 수인을 넣은 것, 심지어는 황제를 넣은 것조차 있다. 이설이 많다는 점도 신화시대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삼황오제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시간적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마천도 삼황보다는 오제 쪽이 그나마 역사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되었다고 여겨지는 신들이 오히려 후대의 신이 아닐까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이미 친숙하게 알려진 신들로 가득 차 있는 시대에는 새로운 신을 끼워 넣을 틈이 없다. 억지로 끼워 넣는다 할지라도 이질 분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녹아들지 못한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좀 더 오래된 시대에다 끼워 넣게 된다. 어차피 혼돈스러운 시대이기 때문에 그 위로는 얼마든지 섞어 넣을 수 있다.

 

새로운 신일수록 더 오래된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가상설'이라고 하는데, 의고 파인 고힐강이 주창했다.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도미나가 나카모토가 같은 설을 주장했다.

 

새로운 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신들도 끼어들 자리를 찾고 있었다. 비주류파의 신들은 자칫 오래전 시대에 자리를 부여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제와 삼황은 신구 관계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류, 비주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황 중에서도 신농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이름처럼 원래는 농업의 신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쟁이와 괭이를 만들어 그 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백초를 맛보아 의약을 찾아내고, 팔괘를 겹쳐서 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도 하니, 의약과 역술의 신이기도 했다. 다섯 줄짜리 거문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교역을 가르쳤다고도 사마정은 말했다. 음악의 신이기도 하고, 상업의 신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약재상들은 신농을 섬겨 왔다. 오사카의 약재상 거리인 도쇼마찌에서는 신농은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전의 한방의들은 동지를 신농제라 부르며 천지나 지인들을 대접했다.

 

축제를 찾아다니는 유랑극단도 신농을 섬긴다. 노점상들의 집에는 신농의 모습을 그린 족자를 걸어 놓은 집이 많다고 한다. 흥행은 음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점쟁이나 약장수는 축제 중에서도 가장 큰 구경거리였다. 더구나 낮에 장을 열어 교역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존재가 바로 신농이다. 이 중국의 신은 서민적인 노점상의 수호신이 되어 일본에서도 '신농 씨'라 친근하게 불려 왔다.

 

신농은 조용한 신이다. 그의 자손이 판천 들판에서 벌어진 황제와의 싸움에서 져서 천하를 잃었다고 사기의 오제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싸움에서 진 신의 조상이니 주류 파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기 열전은 비폭력주의자인 백이와 숙제의 전기를 가장 앞부분에 두었다. 주의 무왕이 무력으로 은나라를 치려고 하자 백이와 숙제가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나라 천하가 되어서도 이 두 사람은 주나라를 섬기는 것은 떳떳지 못한 일이라 여기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서 먹으며 지내다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죽음이 가까워 오자 두 사람이 부른 유명한 노래가 있다.

 

저 서산에 올라 그 고사리를 캐네.
폭력으로 폭력을 대신하고도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우, 하가 홀연히 죽었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아, 가야지, 목숨이 쇠했구나

 

옛 성인들의 이름을 들고, 그와 같은 성스러운 사람들도 이제는 사라졌다고 한탄한 것이다. 성자로서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든 것이 다름 아닌 신농이었다. 우란 순을 말하며, 하란 우를 말한다. 순은 평화주의적 통치자로 알려져 있으며, 우는 치수에 성공한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폭력적인 색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농은 원래부터 그랬다. 비폭력주의로 일관한 백이와 숙제가 마음의 버팀목으로 삼았던 자로 신농을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혹은 백이와 숙제가 속해 있던 부족이 신농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역사에 미묘한 형태로 등장하는 백이와 숙제 두사람이 신농과 같은 계열의 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기에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고'는 '호'와 발음이 같고 '죽'은 '속'과 서로 통하니, 고죽이란 호족에 다름아니라는 설도 있는 듯하다. 여우를 토템으로 한 부족일 것이다.

 

일본에서도 여우를 사자로 부리고 있는 이나리는 농업의 신이다. 중국에는 우가 결혼할 때 여우가 나타났다는 설화가 있는데, 중국 역사학자 고힐강은 이것을 남녀 교합에 여우가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남녀 교합은 번식과 이어지기 때문에 농장의 풍작을 빌 때 여구가 연상되었을 것이다.

 

백이와 숙제가 몸을 숨겼던 수양산은 '견리호미'가 신으로 살았던 곳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4세기 초, 전국 시대 위나라 왕의 무덤에서 급총쇄어라는 책이 발굴되었는데, 거기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그 책은 지금 없지만, 곳곳에 인용되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복원할 수 있다.

 

백이와 숙제가 여우를 사자로 부리던 농업신이었다면 틀림없이 신농 계열일 것이며, 일본의 이나리 신앙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이나리 신앙은 야마시로 국의 귀화 호족인 하타시와 깊은 관계가 있는데, 신앙 자체도 그때 건너왔을 가능성이 있다. 이나리 신앙은 후에 진언 밀교와 합쳐졌다. 미나카타 구마구스는 이나리의 여우는 밀교의 다키니텐이 타던 짐승이라고 해설했다. 신농 씨든, 이나리든 친근한 신은 국경을 초월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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