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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의 홍수 전설

가스마울지마 2022. 7. 23. 12:19

나는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의 초대소에 있는 포도나무 시렁 밑에서 깊은 생각에 자주 빠졌다. 투루판 분지는 해발이 -154미터로 절구 바닥처럼 생긴 곳인데, 당연히 여름에는 더위가 혹독하다. 날마다 40도가 넘지만 반지하식 방이나 포도나무 시렁 밑에서라면 그 무더위를 얼마간은 피할 수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1년 내내 건조하기 때문에 무덥기는 해도 끈적끈적한 느낌은 없다. 이와 같은 지방에서는 지하에서 발굴되는 문물도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7세기 전반에 멸망한 고창국 귀족의 무덤이 지금의 투루판 성에서 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아스타나라고 불린다. 20세기 초반부터 고고학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예를 들어서 오렐 스타인이 발굴한 문물은 영국과 인도로 옮겨져 그곳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타니 탐험대도 이 지역의 출토품들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스타인이 발굴한 문물 중에는 유명한 채색견화가 있다. 그것은 관을 덮을 때 쓰는 비단인데, 거기에 그려진 두 개의 인명용신도는 복희와 여왜를 그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인면용신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용이라면 날카로운 발톰이 달린 발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보이질 않는다. 이 두 사람의 하반신은 서로를 칭칭 감고 있다.

 

중국인 학자인 황문필도 투루판 분지의 무덤에서 같은 디자인의 채색견화를 발굴했다. 나는 우루무치의 박물관에서 그 복제품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이 복희와 여왜라면, 항상 봐서 틀림없이 부부신일 것이다. 그러나 사마정의 삼황본기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두 신 모두 사신인수라고 되어 있지만 여왜는 복희에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복희 시대의 제도를 고치지 않고, 단지 생황이라는 악기만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희 다음이 여왜라는 식으로 적혀 있으니, 시대에 차이가 있었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제도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 부부신임을 짐작체 하는 요소가 약간 있다.

 

투루판 채색견화의 복희와 여왜는 그 손에 규구를 쥐고 있다. 컴퍼스와 자인데, 이는 설계를 하고 물건을 만드는 도구이니 두 신은 창조신이었을 것이다. 초사의 천문이라는 노래는 신화에 대해서 하나하나 의문을 던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속에는, 여왜에게 몸이 있으니 누가 이를 만들었을까.라는 구절이 있다.

 

창조주인 여왜가 황토를 뭉쳐서 인간을 만들었따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창조주인 여왜는, 사신인수라고 하지만 그 '몸'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고대인들도 그 정도의 의문은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여왜와 관련해서는 천지가 무저진 것을 고쳐 보수했다는 설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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