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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최초의 망국 왕조

by 가스마울지마 2023. 11. 14.

제후가 사실상 독립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면, 여러가지 연합에 의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세력 판도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중심 정권인 하가 강력했을 때는 위협이 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이 약해지거나, 혹은 제후 가운데 의욕을 가진 적극적인 지도자가 나타나면 정권 유지가 어려워진다.

 

평판도 중요하다. 탕은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어느 날 탕이 밖으로 나가보니 들판에 새잡는 그물을 사팡으로 쳐놓고, "천하 사방에서 모두 내 그물로 들어와라!"라고 기도하는 자가 있었다. "아아, 이래서는 전부 잡혀 버리고 만다."

 

탕은 이렇게 말하고 세 방향의 그물을 거두게 한 뒤, " 왼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왼쪽으로 가게 하라. 오른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라. 명령을 듣지 않는 자만 내 그물에 들어와라!" 라고 빌었따. 제후는 이것을 듣고, "탕의 덕이 지극해 금수에게 미쳤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탕이 진정으로 덕을 갖춘 수장이었는지, 혹은 연기로 그렇게 보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제후가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세상의 평가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홍보전이 중요한 것이다.

 

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제후는 위, 고, 곤오였다. 다른 제후가 하를 버리고 하나둘 은의 탕 쪽에 붙었지만, 이 세 나라만은 마지막까지 하 쪽에 서 있었다. 탕은 그것을 차례차례로 무너뜨렸다. 후에 시황제를 낳은 진의 시조 비창도 이 시대 사람이었다는 사기의 전본기에는

 

"비창은 하의 걸 때에 하를 떠나 상으로 들어가, 탕의 어가 되어 겉은 명조에서 무찔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란 마부를 말한다. 이 시대에는 말이 끄는 전차로 싸웠던 듯 마부는 제일선에 나서는 전투원이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재상인 이윤도 전쟁에 참여했다.

 

하의 걸은 명조로 도망을 했고, 거기서 대패했다. 명조라는 땅에 관해서도 산서성 안읍현이라는 설과 하남성 정주의 똥쪽이라는 설이 있다. 걸은 다시 패하여 도망치다 삼종이라는 곳에서 붙잡혀 남소로 추방되었다. 틀림없이 지금의 안휘성 단호 부근일 것이다. 걸의 마지막을 잘 알 수 없지만 근심 속에 죽었다고 한다.

 

전후 처리를 할 때의 하의 사를 옮기자는 의견을 탕이 물리쳤다고 한다, 사란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나라는 빼앗았지만 제사권까지 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토지신뿐만 아니라 조상신에게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사를 받지 못한 조상의 영이 커다란 재앙을 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의 제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하의 왕통과 관계가 있는 사람을 근절할 수는 없었따. 은은 하나라에 걸의 후예들에게 제후의 자리를 주었다. 이것은 광용에 의한 조치라고보다는 하나라 조상들의 원령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원시 사람들의 신령에 대한 사고방식은 현대 사람들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계속해야만 했는데 조상신은 그 자손이 올리는 제사 외에는 받지를 않았다. 제사를 올리기 위한 기반으로 그 부족의 영지가 필요했다.

 

왕조가 곧 국가라는 견해에서 보자면, 하 왕조의 멸망은 중국 최초의 망국이었다. 이전에도 제후국의 흥망은 적지 않았을 테지만, 중심 정권의 그것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아 망국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망국의 백성이 된 하의 부족은 좁은 토지를 부여받아 은의 지배를 받으며 유민으로서 괴로운 생활을 계속했다. 후에 은을 쓰러뜨린 주도 전례에 따라서 은의 유민을 송나라로 옮겨 제사를 계속하게 했다. 이 때 주는 하의 유민을 기에 봉했다고 한다. 기는 하남성 개봉시에서 동남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금은 기현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당시에는 역시 중권권에 속해 있었다.

 

약소 제후로 영토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동정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을 뿐 세상의 시선은 싸늘했다. 걸핏하면 조소의 표적이 되었으며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기우'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가 [열자]에 실려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걱정하거나 쓸데없이 앞일이 걱정돼서 고심하는 것을 기우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망국민인 기나라 사람들을 업신여겼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고 여겨진다.